서사의 위기

🔖 수집된 데이터는 그래픽과 다이어그램으로 보기 좋게 요약된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자기는 양이 아닌 질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통한 자기 이해'는 신화 속 키마이라와 같다. 이야기만이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나 자신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수치적 서사'라는 표현은 모순이다. 삶은 정량화가 가능한 사건들로는 이야기될 수 없다.
(...) 경험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재생할 수 있다면 엄밀히 말해 더 이상 기억은 불가능하다.
기억은 체험한 것의 기계적 반복이 아닌, 언제나 새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서사다. 기억에는 필연적으로 틈이 존재한다. 기억은 가까운 것과 먼 것을 전제한다. 경험한 모든 것이 간격 없이 현재로 존재한다면, 즉 가용한 상태라면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다. 체험한 것의 빠짐없는 재현은 이야기가 아니라 보고서나 프로토콜에 불과하다. 이야기하거나 기억하려는 사람은 많은 것을 잊어버리거나 생략할 수 있어야 한다. 투명사회는 이야기와 기억의 종말을 의미한다. 어떤 이야기도 투명하지 않다. 투명한 것은 정보와 데이터 뿐이다.

🔖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 정보와 반대된다. 이야기는 완결성이 특징이다. 즉 종결형식이다.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야기는 결말, 완결, 결론을 지향하고 정보는 본질적으로 항상 부분적이고, 불완전하고, 파편적이라는 점이다. 한계가 없는 세계에는 신비로움도, 마법도 없다. 한계, 과정, 역치가 신비로움을 펼쳐낸다. 이에 대해 수전 손택은 이렇게 썼다. "완결성, 통일성, 맥락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이러한 한계 안에서 나아가는 여정과 관련 있다. 이야기의 끝이란, 그 이야기가 변화하고 잠정적인 관점들이 하나로 모이는 마법적인 지점, 즉 독자가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던 사물이 종국에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고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빅데이터에서는 사물들 사이의 상관관계만이 파악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관관계는 지식의 가장 원시적인 형식이다. 상관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없다. (...) 이야기로서의 이론은 사물들을 관계성 안에 집어넣은 후에도 왜 그렇게 관계되어 있는지 설명하는 질서가 있다. 이론은 사물을 이해하게 해주는 개념적 맥락을 발전시킨다. 빅데이터와 반대로 이러한 질서는 우리에게 지식의 가장 고차원적 형식, 즉 이해를 제공한다. 이는 사물을 개념화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종결 형식이다. 반면 빅데이터는 완전히 열려 있다. 종결 형식을 띤 이론은 사물을 개념적 틀에 담은 후 그것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이론의 종말은 결국 정신적 개념과의 작별을 뜻한다. 인공지능은 개념 없이도 작동한다. 지능은 정신이 아니다. 사물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이야기는 정신만이 할 수 있다. 지능은 계산하고 센다. 정신은 이야기한다. 데이터 기반 정신과학은 정신을 탐구하는 과학이 아니라 데이터과학이다. 데이터는 정신을 몰아낸다. 데이터 지식은 정신의 영점에 해당한다. 데이터와 정보로 가득한 세상은 이야기할 능력을 위축시킨다. 그 결과로 이론은 잘 구축되지 않으며 매우 모험적이기까지 하다.

🔖 이야기는 사회적 응집성을 만든다. 이야기는 의미를 제공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치를 전달한다. 이들은 체제를 만드는 서사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기초가 되는 서사는 공동체 형성 자체를 방해한다. 신자유주의적 성과 서사는 모든 사람을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게 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과의 경쟁 속에 존재한다. 성과 서사는 사회적 응집성, 즉 우리를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연대뿐 아니라 공감까지 해체한다. 자기 최적화, 자기실현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서사 또는 진정성은 사람들을 고립시킴으로써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에 대한 숭배를 좋아하고 스스로가 지도자인 곳, 모두가 스스로를 생산하고 스스로를 공연하는 곳에는 안정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
이제는 서사가 상업에 의해 본격적으로 독점되고 있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공동체가 아닌, 소비사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서사는 마치 상품처럼 생산되고 소비된다. 소비자들은 공동체, 즉 우리를 형성하지 않는다. 서사의 상업화는 이들에게서 정치적 힘을 빼앗는다. 그렇게 특정 상품에 공정무역과 같은 도덕적 서사를 씌워 도덕마저 소비 가능하게 만든다. 서사적으로 중개된 도덕적 소비는 그저 자기 가치만을 높일 뿐이다. 서사를 통해 우리는 서사를 발전시키는 공동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자아와 연결된다.